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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공시 의무화] 핵심은 ‘사업보고서’와 통합...회계업계가 박수치는 이유

ESG공시 사업보고서 편입되면 회계사 업무 영역 확대 지속가능보고서 폐기 수순, ESG 평가기관 위상도 약화


기업이 지속가능 경영을 얼마나 잘 하는지를 이해관계자들에게 보여주는 ESG 공시의 방법은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①지속가능성 보고서 방식이다. 주로 유럽 국가들이 1990년대 말부터 시작해 전 세계 기업으로 확산했다. 한국 대기업들(현재 약 150개)이 내고 있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도 이 계보에 속한다. 기업들이 환경 및 사회에 대한 책임 활동을 기술하는 자발적 보고서다.


하지만 이 방식은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세계 주요국이 ESG 공시를 의무화하면서 폐기 수순에 들어갔다. EU는 지난해 ESRS(유럽지속가능성공시기준) 초안을 발표하면서 ESG 공시의 사업보고서 통합 방침을 천명했다. 기존의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계속 내는 것은 기업의 자유지만, 이를 공식적인 ESG공시 채널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한 것이다.


②사업보고서 통합 방식이다. 기업이 기존 사업보고서 상의 재무제표와 더불어 재무제표가 환경, 사회, 거버넌스 등 ESG 요인들로부터 어떤 영향(리스크/기회)을 받는지를 한꺼번에 묶어 공시하는 것이다.


IFRS(국제회계기준) 산하 ISSB(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가 지난달 확정 발표한 ESG 공시기준이 대표적이다. 이 방식을 채택하면 사업보고서가 거의 2배로 두꺼워진다고 보면 된다. 미국이 선호하는 방식이다.


앞서 설명한 EU의 ESRS와 비교하면 똑같은 사업보고서 방식이지만, 내용에 차이가 있다. ISSB 기준이 환경 및 사회 등 외부 ESG 요인으로 기업이 받는 영향(단일 중대성)을 주로 요구하는데 비해, ESRS는 여기에 더해 기업이 환경 및 사회에 주는 영향까지(이중 중대성) 밝히라고 요구한다.


③증권거래소 공시 방식이다. 상장기업들이 현재 주가에 영향을 미칠 주요 정보를 거래소시장에 공시하듯이, 금융당국이나 거래소가 만든 ESG 공시기준에 따라 상장사들은 칸을 메꾸듯이 관련 정보를 공시하는 것을 말한다.


이 방식이 채택되면 기업들은 굳이 지속가능성보고서나 통합 사업보고서를 내지 않고 시장 공시를 통해 직접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게 된다. 그만큼 돈이 덜 들고, 법적으로 책임질 위험도 작아진다.


한국은 ISSB의 사업보고서 방식 채택


이제 관심은 우리나라가 갈 길이다. 정부는 ‘25년 상장 대기업부터, '30년에는 전 상장회사를 대상으로 ESG공시를 의무화하겠다고 이미 공표한 상태다.


많은 기업이 ③안을 기대하고 있다. 공시 부담이 작기 때문이다. 거래소 공시를 기본으로 하고 역량이 닿는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해설서에 해당하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추가 발행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대한상공회의소 등 조사에서 확인되고 있다. 더구나 윤석열 정부는 친기업 시장자율을 표방하고 규제를 최소화하는 경제정책을 펴고 있어 그런 기대를 키웠다.


그런데 정부는 작년 말 ②안을 사실상 채택했다. ISSB 공시기준을 표준으로 삼고, 이를 국내에 적용하기 위해 한국회계기준원 산하에 KSSB(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를 설립한 것이다. ISSB와 KSSB는 누가 봐도 이름부터 형님과 아우다.


이런 흐름은 일찌감치 감지됐다. 거래소 공시방식을 채택한다면 분주했어야할 한국거래소가 아무런 미션도 부여받지 못한채 시간을 보냈고, 산하 한국ESG기준원(옛 한국지배구조연구원)은 이름만 그럴듯하게 바꿨지 기존의 ESG평가 등급 장사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금융위원회와 KSSB는 ISSB 공시기준을 기초로 오는 3분기 말 한국형 ESG 공시기준안을 확정 발표하기로 했다. 그 전에 공청회를 열어 업계 반응도 살필 예정이다.


기업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무엇보다 ISSB 방식에 따라 ESG 경영 내용을 사업보고서에 담아 공시할 경우 법상 책임이 너무 커지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사업보고서는 ’자본시장법‘에 근거해 발행된다. 따라서 사업보고서에 담긴 ESG공시 내용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나면 법상 배상책임에 몰릴 수 있다. 물론 ③안의 시장 공시위반도 처벌을 받게되지만, 그 강도는 상대적으로 가볍다.


정부, 2년 간 시장공시 뒤 법정공시 전환 계획


정부도 이런 사정을 모를리 없다. 그래서 ’25년부터 ESG공시를 의무화하되, 일단 2년 간은 KSSB가 만들 간소화 공시기준에 맞춰 시장공시를 실시한 뒤 ‘27년부터 KSSB 일반기준에 따른 법정공시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년씩 순차적으로 유예기간을 두는 방식인데, ’30년으로 제시된 전 상장기업의 ESG공시도 법정공시는 ‘32년부터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약간의 시간을 벌 뿐이지, 사업보고서 통합 방식으로 가는데는 변함이 없다.


따지고 보면 사업보고서 방식이 그리 나쁜 게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ESG라는 게 환경 및 사회에 책임을 다하려는 기업시민 운동의 성격을 가지며, 선진국의 공급망 실사법과 탄소국경세 등을 감안할 때 어차피 피해갈 수 없다면 단단히 각오하고 정면돌파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법상 손해배상 등을 걱정하기에 앞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ESG경영을 철저히 하고 그 내용을 솔직담백하게 공시하면 그만이라는 시각이다. 선진 각국의 ESG 법제화 방향을 봐도, 절대 수준의 ESG 경영을 강제하는 게 아니라 뭘 하고 있으며 그 성과가 어느 정도인지 그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달라는 게 핵심이다.


산업별 특성에 따라 탈탄소나 공급망관리 등 항목에서 여전히 좋지않은 지표가 나오더라도 최선을 다해 개선해나가는 모습을 보이면 크게 문제삼지 않겠다는 의미다.


회계법인 웃고, 법무법인ㆍ평가기관 울상


이제 ESG 공시기준의 확정을 둘러싼 ESG 관련 사업 플레이어들의 이해득실을 따져보자. 최대 승자는 공인회계사 업계다. 해외든 국내든 마찬가지다. ESG 공시기준을 만드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게 바로 회계업계의 밥그릇을 만드는 IFRS인 것을 감안하면 당연한 수순이다.


ISSB 공시 기준에 따라 ESG 공시 사항이 사업보고서와 묶이면 회계업계의 업무는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업보고서의 작성 및 감사 관련 업무가 바로 공인회계사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ESG 데이터 인증 및 일반적 ESG 컨설팅 업무도 회계업계로 몰릴 가능성이 크다.


법무법인들은 낙담하고 있다. 그동안 ESG 의무화 시대를 대비하며 회계업계와 치열하게 경쟁을 벌여왔던 터였다. 사실 법무법인들은 ESG 공시는 좀 느슨하게 하고, 공급망실사법 등 ESG 실행 관련 법규가 빡빡하게 짜여지길 기대했다. 그래야 ESG 리스크 관련 사전 법무 컨설팅과 사후 소송이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국의 ESG 규제가 공시 위주로 전개되고, 공시 관련 업무와 컨설팅이 회계의 영역으로 편입되면서 일감이 기대에 못미치게 됐다. 공시의 강화는 ESG 사안들을 둘러싼 소송을 줄이는 예방 효과도 가져올 전앙이다


ESG평가기관들의 위상도 갈수록 쪼그라들게 생겼다. 그동안 ESG평가기관들은 ESG등급 산정에 쓰이는 데이터 수집과 축적의 우위를 바탕으로 데이터 판매 및 평가등급 올리기 컨설팅, 시상식 등으로 재미를 봤다. 하지만 공시 의무화로 ESG 데이터가 신속 정확하게 시장에 쏟아지면서 데이터 확보의 우위를 상실하게 됐다.


더구나 국내 ESG평가기관들은 같은 평가 대상 기업을 놓고도 워낙 등급 차이가 크게 나타나 평가모델의 신뢰성이 실추된 상황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MSCI 등 해외 평가기관들의 등급을 훨씬 선호한다.


표준화된 ESG 공시 데이터가 나오기 시작하면 정부가 직접 나서 ’ESG 데이터 플랫폼‘(기재부 주관)을 만들고 ESG 평가등급이 거의 자동 산출되는 서비스(산업부와 중진공)도 내놓을 계획이다.


ESG 공시 의무화 시대가 열리면 ESG는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라, 기업의 일상적인 업무 프로세스의 하나로 자리를 잡게 된다. 특별한 것이니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일종의 ’공포 마케팅‘을 했던 업자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반면 ESG 각 요소 별로 실무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자들이 득세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출처 : ESG경제(http://www.esg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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